[펌] 프레시안 뉴스

2010. 12. 29. 00:28
해마다 연말이면, '올 한 해가 이렇게 빨리 지나갔다니'라며 한숨을 쉬곤 합니다. 하지만 차근차근 돌아보면, 지난해 이맘때와 달라진 게 참 많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지요. 경제 분야에선 특히 그랬습니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겐 낯설던 말들이 어느새 익숙해졌습니다. 그만큼 사건도 많았고, 변화도 컸다는 이야기지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스마트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은 지난해만 해도 보통 사람들이 자주 입에 올릴 일이 없었던 말들입니다.

<프레시안>은 2010년 한국 경제를 3개의
키워드정리하는 연말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스마트(Smart)', '소셜(Social)', '스몰(Small)'이 그것입니다.

올 한 해 동안, 스마트폰과 SNS 등 새로운 정보기술(IT) 서비스가 널리 확산됐습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의 생활과 생각에도 큰 변화를 낳았습니다. 동시에 이는 지식 산업의 중요성을 한국 경제를 이끄는 이들에게 깊이 각인시켜준 사건이었습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경영 복귀 명분으로 내세운 것도 스마트폰 충격이었습니다. 토목 사업에만 열을 올릴 뿐 지식정보 산업은 홀대한다는 비판 속에서 꿈쩍하지 않았던 정부 당국 역시 뒤늦게나마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는 듯합니다. 물론 이런 깨달음이 토목 사업의 축소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기술과 지식을 아우르는 IT융합 서비스의 중요성은 주요 정책 결정자들이 공감하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변화가 내년에는 어떤 정책으로 이어질지 주목됩니다.

한편, 올해는 극단적인 시장 맹신에 대한 반성이 고조된 해이기도 했습니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장하준 교수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게 한 예입니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신드롬을 일으킨 일 역시 넓게 보면 비슷한 맥락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더 이상 "부자 되세요"라는 외침에 열광하지 않습니다. '단숨에 10억 만드는 비결' 따위에 열광하는 분위기도 한풀 꺾였습니다.

이는 '노력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꺾인 탓이기도 합니다. 경쟁의 규칙 자체가 공정하지 않다는 믿음이 널리 퍼진 것이지요. 여기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공정과 정의를 생명으로 여겨야 할 사법부가 유독 이 회장에 대해서는 관대했습니다. '공정 사회'를 내건 현 정부 역시 이점에선 다를 게 없었습니다. '법(法)이 정의롭지 않다'는 깨달음은 분명 '정의' 신드롬의 한 이유일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는 다른 한편 사회적(Social) 가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습니다. '자유로운 개인'끼리의 공정한 경쟁이 환상이라면, 결국 개인과 개인의 연대가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과거 '작은 정부'를 내세웠던 보수 정치인들이 경쟁적으로 '복지'를 이야기하는 게 한 예입니다. 적어도 이제는 '누구나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고, 정부는 이들을 위한 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무시하는 정치인은 살아남기 어렵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는 '작은(Small) 것'의 가치를 다시 환기시켰습니다. 에른스트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다시 읽는 이들도 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꼭 철학적인 차원에 그치지 않습니다. 올 한 해를 뜨겁게 달궜던 경제 이슈이기도 합니다. 바로 영세 자영업자들의 생존권 문제입니다. '복지'의 불모지대인 한국에선 영세 자영업이 사실상 사회안전망 구실을 합니다. 좋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서 승승장구하던 이들도 노년에는 딱히 할 일을 찾기 힘듭니다. 하지만 비슷한 경제 규모를 지닌 다른 나라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자식 교육비는 이들을 그냥 쉴 수 없게 합니다. 또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고용 불안이 심각해진 탓에 한창 일할 나이에 퇴직하는 경우도 크게 늘었습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세상에 내던져진 이들이 흔히 하는 게 퇴직금으로 '치킨집'이나 '피자집'을 차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치킨'과 '피자'가 올해 경제계의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그동안 영세 자영업자의 분야였던 이들 업종에 대기업이 뛰어들었던 탓입니다. 롯데마트가 출시한 '통큰 치킨'은 숱한 유행어를 낳기도 했습니다.

선진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자영업 비중, 고용 불안, 열악한 사회안전망, 높은 교육비 부담과 아울러서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아울러 '작은 기업', '작은 가게'가 '큰 기업', '큰 가게'와 함께 살아가는 경제 생태계를 짜는 문제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내년도 한국 경제를 이끄는 이들에게 던져진 숙제입니다.

이런 세 개의 키워드, '스마트(Smart)', '소셜(Social)', '스몰(Small)'은 공교롭게도 모두 'S'로 시작합니다. 전두환 정권 시절, 국민을 어리석게 만들려던 '3S(Screen, Sports, Sex) 정책'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2010년의 키워드인 '3S'는 다릅니다. 지식과 사회, 작은 것의 가치를 긍정하는 희망의 싹이라고 봤습니다. 독자님들이 부담없이 읽으면서 올 한 해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

스마트폰 열풍, 그래서 우린 더 '스마트'해졌나?

올해의 단어로 '스마트폰'을 빠뜨리는 이들은 흔치 않다. 휴대폰무선인터넷이 연결된 작은 컴퓨터처럼 쓸 수 있게끔 한 '스마트폰'은 우리 국민의 온라인 활동 영역을 획기적으로 확장했다. 그리고 이는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확산과 맞물리면서 한국 사회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올해 초 '아이폰 쇼크'로 시작된 일련의 흐름에 재계 지도자들도 한방 먹었다는 표정이다. 뒤늦게 스마트폰, SNS 등으로 대표되는 IT융합 서비스에 인력과 예산을 투입하느라 분주하다. 다들 '스마트'를 입에 달고 다니는 요즘, 그래서 우리는 지난해보다 더 '스마트'해졌을까?

장담하기 어렵다. 합리적인 업무 계획 없이 그저 노동시간만 늘리는 업무 방식, 창의적 아이디어를 압살하는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의사결정 구조, 자본의 극단적인 집중화 등이 여전한 탓이다. 한국이 '아이폰 쇼크'를 받는 쪽은 될 수 있을 지언정 세계에 이런 '쇼크'를 주는 쪽은 되기 힘든 이유다. 한마디로, 올 한 해를 요란하게 했던 '스마트' 열풍에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스마트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이는 '스마트' 열풍의 진앙인 IT업계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폰 촛불과 트위터, 페이스북…'날개' 단 집단지성

스마트폰 가입자 수는 불과 1년 사이에 80여만 명에서 610여만 명으로 늘어났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이 숫자가 내년에는 1620만 명으로 불어나 전체 휴대전화 가입자의 32%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급진적인 변화는 스마트폰이라는 기기의 변화가 SNS로 대변되는 웹 환경 변화와 맞물렸기에 가능했다. 그릇과 내용물이 동시에 바뀐 셈이다. 바다 건너 미국의 그것으로만 알려졌던 SNS란 단어가 불과 1년 안에 대중화돼, 이제 한국은 트위터 회원 230만 명 시대(12월 22일 기준, @OikoLab 조사)를 맞았다.

페이스북도 느린 속도지만 점차 영역을 넓혀가면서 어른들의 새로운 놀이터성장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이 발표한 '2010년 인터넷 이용실태 조사'를 보면 5월 현재 인터넷 이용자 수는 3700여만 명에 달했으며, 이 중 65.7%가 SNS를 이용하고 있었다.

인터넷 환경이 유선에서 모바일로, 획기적으로 확장된 올해를 두고 많은 이들은 "똑똑한 IT가 세상을 바꾼다"라고 여기게 됐다. 실제 기성 권력으로는 통제가 어려웠던 일도 일어났다. 집회 현장에 나간 시민들은 아이폰으로 촛불을 켰고, 전통적인 뉴스매체가 SNS 이용자들의 대화모아 기사화하기도 버거워할 지경이었다. '똑똑한' 시민들은 SNS에서 생각을 공유했고, 스마트폰은 이를 항시적으로 중계해 이른바 '집단지성'의 운동(movement) 가능성을 확장시켰다.

스마트폰 열풍은 단순히 정치지형을 바꾼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새로운 문화를 낳았다. 기업과 언론사는 물론, 정부마저 누리꾼과의 소통을 위해 SNS 관리에 큰 신경을 쏟게 됐다. 스마트폰 환경에 맞는 어플리케이션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고, 이 환경에 적응한 누군가는 경제적으로도 큰 보상을 받았다. 이 모두 불과 1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들이다.

'스마트' 열풍의 핵심은 요약하자면 기성에 대한 극복, 극단적인 효율성, 즉각적인 감성에의 호소가 될 것이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각광받고 단순하고 소비자 지향적인 제품이 널리 팔렸으며, 지식 콘텐츠의 중요성이 부각된 게 증거일 것이다. 당초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에 단 하나 달린 버튼마저 없애려 했던 점, 어플리케이션 개발자와의 수익배분을 중시했던 점 등이 대표적 예다.

IT개발자는 '삽질' 중

▲뒤늦게야 국내 시장이 받아들인 애플의 아이폰은 업계 생태계까지 뒤흔들었다. 스마트폰 열풍은 경제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크게 움직였다. 그러나, 이동통신요금의 급증은 해결해야 할 숙제다. ⓒ뉴시스
그런데 이런 충격은 한국 사회의 단단한 껍질에 튕겨져 나왔다. '스마트' 열풍을 가장 직접적으로 맞은 IT 업계가 별로 변한 게 없다는 게 그 증거다.

IT산업 종사자들에겐 전혀 새롭지 않은 이야기지만, 한국의 IT산업을 움직이는 논리는 건설업의 그것과 완벽하게 같다. 합리적인 일정 관리, 효율적인 업무 계획 없이 일단 노동력 투입만 늘리고 보는 구조다. '갑을관계'로 대표되는 하도급 구조 역시 견고하다. 홈페이지 제작사에서 근무한 김모 씨(25)는 "24시간 업무 대기 상태"라며 "프로젝트가 연달아 하청구조를 타고 내려오니 개발자들은 항상 초죽음"이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 '일의 노예'… 한국의 IT개발자가 사는 법)

건강에 이상신호가 온다는 말들은 많은 직장인들이 하지만, IT업계만큼 이 말이 농담처럼 지나가는 곳은 드물다. 실제 한 3차 하도급 업체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A씨는 "원청업체 단지 안에 외주업체를 위한 단지가 있다. 그곳을 하청업체 개발자들은 감옥에 비유한다. 거기서 시키는대로 일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관련 기사 : "사람 잡는 야근…폐 잘라낸 SI개발자")

정부 정책은 훌륭히 세워졌지만 지켜지지 않는다. 중소 IT업체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새 제도 개설이 필요한 게 아니다. 있는 제도가 제대로 지켜지도록 감독을 강화해달라"고 요구한다. 정부의 감독만 강화돼도 업계에서 생각하는 상식이 '몰상식'이라는 점을 사람들이 알게 된다는 말이다. (☞관련 기사 : IT개발자 잔혹사, 정부는 無대책)

이는 노동자의 창의력을 중시하는 기업 문화, 이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혁신이 이어지는 기업경쟁력을 IT업계의 기본으로 꼽는 피상적 인식과 거리가 멀다. 해외의 IT기업과도 모양새가 다르다. 애플에 부품납품 계약을 체결한 국내 중소기업의 한 노동자는 자신의 블로그에 애플과 국내 대기업의 차이를 조목조목 설명해, 누리꾼들의 공감을 크게 얻었다.

"'접대' 없이 어떻게 장사하느냐"는 대기업 직원

애당초 특정 산업이 전체 산업의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믿음 자체가 허구다. IT산업이건, 문화예술 산업이건 마찬가지다. 그리고 한국의 산업 생태계를 관통하는 원리는 과거 박정희 개발 독재 시대에 만들어졌다. 이를 가장 잘 구현한 업종은 건설업이다.

관공서와 대기업, 이른바 '갑'에게 '로비'하는 게 중요하고, 그래서 '술자리'가 잦다. 보통은 '아가씨 있는 술자리'다. 일단 일감을 따내기만 하면, 일은 하청업체와 비정규직이 한다. 꼼꼼한 뒷마무리, 더 나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위한 연구개발은 늘 뒷전이다. 시쳇말로 '삽질'의 연속이다. 이런 경제 생태계에서 굳이 '스마트'해질 필요는 없다. 대신 '유들유들함'과 '뻔뻔함', 그리고 '무조건 근면'과 '복종'이 미덕이다. 이래서는 '제2의 아이폰'은 기대하기 어렵다.

지난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 직전, <월스트리트저널>은 "기적은 끝났다. 앞으로의 방향은"이라는 제목의 한국 특집 기사에서 '밤 문화'가 중요한 한국 사회의 비즈니스 관행을 지적한 후, 이를 과거 국가개발주의 전략의 모형으로 지적하고 그 한계가 가까워졌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 "G20 열리는 한국, '룸살롱 비즈니스' 나라)

실제로 한 대기업 영업팀 직원은 "자회사 출신이 여행업체를 차려 이른바 '접대' 사업을 전담하고, 회사는 이 회사에 주는 돈으로 접대비를 비용처리한다. 당연히 접대에는 '흔히 생각하는 과정'이 다 포함된다"며 "이렇게 안 하고 어찌 장사 하나. 어차피 공공연한 비밀 아닌가"라고 말했다. 한국 경제의 속살은 바뀐 게 없다는 이야기다.

안상수 '자연산' 논란의 또 다른 진실

이런 점에서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일으킨 이른바 '자연산' 논란은 시사적이다. 주요 언론은 안 대표의 말 실수에만 초점을 맞췄지만, 진짜 주목할 대목은 따로 있다. 여전히 한국의 권력은 룸살롱으로 대표되는 은밀한 거래환경에서 작동한다는 점이다. 정치권력이건, 경제권력이건 다르지 않다.

경제학자라면 누구나 이런 경제 모델이 나쁘다는 걸 안다. 의사결정의 투명성이 떨어진다는 점, 거래비용이 늘어난다는 점, '룸살롱'으로 대표되는 지하경제는 세수를 악화시켜서 국가 재정을 망친다는 점 등이 그 이유다.

정치, 경제 권력은 언제까지 '룸살롱' 비즈니스에 머무를까. 올해 초 겪은 '아이폰 쇼크'와 올해 말 겪은 '자연산' 논란을 함께 떠올리면 드는 의문이다.
Posted by 김반장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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